선거의 환호는 끝났다. 당선인에게 남은 것은 승리의 기억보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책임있게 실천해야 할 시간이다.
민선 9기 남원시 출범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거 과정에서 시민에게 약속했던 공약을 현실 행정의 기준으로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당선인 측의 ‘예산확보 행보’가 먼저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는 엇갈린 시선도 나오고 있다.
물론 지역발전을 위한 예산확보 노력은 중요하다. 중앙부처와 소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은 시장이 해야 할 핵심역할 중 하나다.
다만 선거 과정에서 남겨진 갈등을 봉합하고 시민 통합의 메시지를 먼저 전하는 과정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성과를 알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어떤 예산을 어떤 목적과 계획으로 확보할 것인지 시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과정이야말로 책임 행정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당 경선 과정의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남원경찰수련원 유치과정에서도 처음에는 ‘내가 해냈다’는 식의 성과 강조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기관과 관계자의 노력이 함께한 결과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치에서 성과를 알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자 한 통, 전화 한 번으로 모든 결과를 만든 것처럼 비치는 홍보는 개인 이미지를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시민이 요구하는 공직자의 신뢰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중앙정부와 소통하고 새로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시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모든 성과를 한 사람의 이름으로 가져가는 데 있지 않다.
행정 조직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공무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예산확보 과정에 함께 참여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시장의 역할이다.
예산 확보는 누군가를 한 번 만나고, 한 번 요청한다고 곧바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중앙정부 설득과 사업논리 개발, 담당 공무원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협업이 쌓여야 가능한 과정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했다’는 성과 경쟁보다는, 어떤 과정과 협력을 통해 남원의 미래 재원을 만들어 갈 것인가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무엇을 위한 예산인지, 실제 가능한 사업인지, 시민에게 약속했던 공약이 현실에서 추진 가능한지 검증하는 과정이 먼저다.
성과 홍보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냉정한 점검이다.
양충모 남원시장 당선인이 후보시절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던 5500억 원 규모 AI 데이터센터 유치 역시 첫 검증 대상이다.
기획재정부 출신이라는 경력과 중앙부처 경험을 남원발전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단순한 ‘예산 확보 활동’이라는 표현이 아니다.
당선인 자격으로 어느부처 누구를 만나 어떤 사업을 논의했는지, 실제반영 가능성과 추진 일정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이다.
예산 확보라는 말은 쉽다.
하지만 행정의 성과는 결국 결과로 평가된다.
만약 민선 9기 과정에서 남원시가 획기적인 예산 성장과 발전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시민들은 그 능력을 인정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까지 필요한 것은 기대감을 키우는 홍보보다는 투명한 계획과 검증이다.
특히 5500억 데이터센터 공약은 더욱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짓는 사업이 아니다.
24시간 운영 가능한 전력 공급망, 송전시설, 냉각시스템, 통신인프라, 전문인력, 실제 운영기업 참여까지 맞아야 하는 고도의 산업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AI 산업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남원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시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인수위원회다.
인수위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5500억 데이터센터는 가능한가. 민간 투자자는 확보됐는가.
전력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가. 사업 구조는 검증됐는가. 지역경제 효과는 얼마나 되는가.
인수위는 새로운 시장의 성공적인 출발을 준비하는 곳이지, 후배 공무원을 평가하거나 과거 행정을 질책하는 자리가 아니다.
특히 인수위 운영에는 시민 세금이 들어간다. 인수위원 활동 수당역시 결국 시민 혈세다.
그렇기 때문에 인수위는 특정 인사의 경력 활용 공간이나 퇴직이후 활동 무대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시민의 돈이 들어가는 만큼 공약을 검증하고 남원의 미래 방향을 찾는 책임있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퇴직 공직자출신 인수위원의 발언을 두고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인사가 특정 행정을 두고 “그런 바보스러운 행동이 어디 있느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적절성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직 경험이 있다면 누구보다 행정 구조의 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책결정 권한은 위에서 행사되고, 그 결과에 대한 부담은 현장 공무원에게 향하는 행정 구조의 현실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인사권을 가진 시장 중심의 정책결정 구조 속에서 실무 공무원들이 처했던 위치와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상황을 두고 ‘바보스러운 행동’이라는 표현으로 평가한 것은 적절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공직 경험을 가진 인물이라면 누구보다 행정 내부의 작동 방식과 의사결정 과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일부 시민들은 “과거 행정을 평가하려면 실무자 개인을 향한 질책보다 당시 정책결정 과정과 시스템 전반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직 경험은 후배 공무원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 아닌,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나은 방향을 제시하는데 쓰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다면 책임의 방향은 개인보다 시스템과 정책 검증을 향해야 한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당선인의 판단과 철학이 주변 조율 과정에서 왜곡되는 일이다.
선거캠프 과정부터 공약 방향과 메시지 관리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특정 인사의 영향력보다는 시민이 선택한 당선인이 직접 책임지는 시정이다.
(한때 조언자가 있었다면) 조언은 필요하지만 결정과 책임은 시민에게 선택받은 당선인의 몫이다.
공약수정 역시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책임있는 행정의 시작이다.
다른 단체장들도 선거이후 현실 검토를 통해 공약을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다시정한다.
양충모 당선인 역시 인수위가 공약을 냉정하게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쓴소리는 불편하다.
그러나 ‘약고고구, 충언역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을 고치고, 진심어린 충고는 귀에는 거슬리지만 사람과 조직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달콤한 말만 듣는 조직은 문제를 키운다. 지금 필요한 비판은 발목 잡기가 아니다.
남원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주사다.
선거에서는 꿈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은 결과와 책임으로 평가받는다.
시민이 묻는 것은 하나다. “얼마짜리 공약이었느냐”가 아니다.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들 준비가 되어있느냐”이다.
민선 9기 출발점에서 양충모 당선인과 인수위원회가 가장먼저 답해야 할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