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의 서랍, 잃어버린 활자와 지워지지 않는 기억
기억의 갈피를 더듬어 올라가면 1985년의 어느 날에 닿는다. 아직 세상이 군부의 서슬 퍼런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 시절, 대학 학보사에서 활동하던 고등학교 후배로부터 한 편의 글을 부탁받았다.
서가에 꽂힌 낡은 자료들을 뒤적이고, 신문 기사와 소설, 흩어진 논문들의 파편을 모아 며칠 밤을 지새우며 써 내려간 글의 제목은 '4·3 운동'이었다. 국가폭력의 거대한 그림자 속에 숨죽여야 했던 금기의 역사를 활자로 매듭지으며, 활자 하나하나에 무거운 부채감을 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학보를 찾으려 집안 곳곳을 뒤졌으나, 결국 그 빛바랜 종이 무더기는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제법 정성 들여 벼려낸 글이었기에 아쉬움은 짙게 남았다. 하지만 종이 위의 활자는 사라졌을지언정, 그때 제주라는 섬이 품고 있던 거대한 비극을 처음 활공하듯 내려다보며 느꼈던 전율과 슬픔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화인(火印)처럼 찍혀 있다.
문학, 굳게 닫힌 역사의 봉인을 뜯다
역사의 진실은 때로 건조한 기록보다 한 편의 문학을 통해 더욱 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든다. 내게 제주의 아픔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뼈저리게 가르쳐 준 것은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이었다. 1978년에 발표되어 이듬해 단행본으로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수십 년간 망각의 늪에 빠져 있던 제주 4·3 사건을 백일하에 드러낸 역사적 문제작이었다. 학살의 트라우마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순이삼촌의 삶은, 곧 국가폭력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제주도민 전체의 희생상 그 자체였다. 이 소설은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대에 던져진 거대한 돌멩이와 같았다.
이후 나의 시선은 현해탄을 건너 재일 소설가 김석범 선생의 『화산도(火山島)』로 향했다. 이 작품의 번역과 출간의 역사는, 마치 제주의 진실이 세상에 온전히 드러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1980년대 말, 소설가 이호철 등의 손을 거쳐 실천문학사에서 5권으로 번역 출판되었을 때만 해도 이 거대한 서사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그로부터 긴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소설이 처음 연재를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나고, 화산도가 마침내 일본에서 완결된 지 18년이 지난 2015년에 이르러서야 김환기와 김학동의 번역으로 총 12권의 완역판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반세기라는 긴 세월을 인내하며 완성된 이 대하소설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제주의 피울음을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문학적 진혼곡이었다.
1947년 3월 1일, 동백꽃이 붉게 떨어지던 날
제주 4·3 사건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우발적 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광복 직후의 혼란과 이념의 대립, 그리고 분단으로 치닫는 시대의 모순이 좁은 섬 안에서 응축되었다가 폭발한 필연적 비극이었다.
그 서막은 1947년 3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절 기념대회에서 기마경찰의 말굽에 어린아이가 채이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항의하는 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구를 겨누면서 모든 비극이 잉태되었다. 이 발포 사건은 미군정 예하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과 인권 유린의 신호탄이었으며, 섬 전체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경찰과 우익 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그리고 남한만의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1948년 4월 3일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4·3'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러나 이 무장 봉기를 진압한다는 명분 아래 국가가 휘두른 폭력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 광기로 변모했다.
국가폭력의 소용돌이와 무고한 희생
1948년 4월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의 7년여의 세월은 제주도민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정부는 무장대를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국군과 경찰은 물론, 서북청년단과 대한청년단 같은 극우 정치깡패들까지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것은 진압을 넘어선 폭동적이고 야만적인 '민간인 학살'이었다.
해안선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무조건 사살하라는 포고령 아래, 산과 바다, 오름과 들판은 무고한 양민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좌우익의 극단적인 갈등 속에서, 그저 농사짓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던 평범한 도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의 구덩이로 내몰렸다.
이 참혹한 살육전은 고려 시대 '목호의 난' 이래 제주 역대 최대의 참사로 기록된다. 나아가 여순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등과 함께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자행된 가장 대표적이고 비극적인 국가폭력 사건으로 우리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끝나지 않은 순례, 평화의 섬을 향한 발걸음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오늘날 제주 4·3 사건을 정의하는 이 건조한 문장 이면에는, 가족을 잃고도 연좌제의 사슬에 묶여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섬사람들의 반세기가 넘는 한(恨)이 서려 있다. 이제 제주에는 이 억울한 죽음들을 위로하고 진실을 증언하는 평화공원과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차가운 빗돌에 새겨진 수만 명의 이름표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남은 자들의 몫을 고민하게 된다.
1985년, 잃어버린 학보의 지면 위에 내가 담아내려 했던 풋풋한 활자들은 이제 문학과 역사의 거대한 강줄기가 되어 내게 다시 돌아왔다. 『순이삼촌』의 발작적 슬픔과 『화산도』의 끈질긴 증언을 거쳐, 우리는 마침내 제주의 봄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제주 땅에 무심히 피어나는 붉은 동백꽃은 우리에게 말한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되며, 기억하지 않는 비극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람 부는 시코쿠의 순례길이 내면의 구도를 향한 길이라면, 제주 4·3의 흔적을 밟아가는 길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했던 잔혹한 역사를 참회하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평화의 이정표를 세우는 순례일 것이다. 화산도 제주의 땅 아래, 아직도 식지 않은 그 뜨거운 슬픔에 깊은 위로와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빛나사역사연구소 소장
김준권 문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