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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이 새정치민주연합 식민지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새정치라는 말이 무색하다. 원칙도, 명분도, 실리도 없다. 그저 계파 나눠먹기와 자기사람 챙기기만 있을 뿐이다.
유권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각종 선거 때, 자당의 인물을 유권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공천이다. 그래서 정당은 각종 선거 때마다 인물 찾기에 고심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와는 달리 일꾼 위주의 인물을 원한다. 그만큼 지방선거는 지역민과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좋은 점은 어떤 사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할 때, 과반수이상의 구성원 의견을 수용하는 것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절대 아니다. 때론 소수의견이 다수의 생각을 초월, 소중한 가치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반론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정연은 검증되지 않은 전화 여론조사로 도내 14개 시·군지역의 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분열은 물론, 착신전화 등 물리적인 기현상이 나타나는 등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나 공천 작업이 이뤄졌다.
심지어는 후보등록일 하루전날에 선거인단을 모집하고,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누구도 경선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공천을 실시했다. 어떤 유권자가 이런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에게 표를 주겠는가.
솔직히 유권자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공천을 잘 했느니, 잘 못 했느니 흥분할 일이 아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면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새졍연의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 분노하고 고민하는 것은 작금의 정치 환경이 그렇지 못함에 있다.
우리 모두가 부정할 수 없듯이 전북지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이웃 광주·전남과 더불어 특정정당 즉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으로 구분되는 지역이다.
특정정당에서 ‘작대기를 공천해도 당선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새정연의 독주가 수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특정정당의 독주폐해는 특정정당만의 몫은 아니다. 지역의 유권자 잘못도 많다. 특히 민심을 호남과 영남으로 나눈 세력들에게 그 원인이 크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지역감정에 의존, 특정정당의 독주시대를 이어가야 할까. 이에 이번 선거부터는 새정연이 공천한 후보들에게 묻지마식 몰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또 작은 물이 모여 큰 강을 만든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만이 이들의 오만함을 바로잡을 수 있다. 수년 동안 특정정당의 옷을 입고 손쉽게 국회와 자치단체장직에 오른 인사들은 이 지역의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는 등의 폐해와 악순환을 고착시켰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염치도, 상식도, 공정성도 저버린 새정연의 공천후보를 우리가 분명하게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고 분명한 목소리를 낼 때,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정의로운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사회단체와 언론들이 나서 옳고 그름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유권자들이 바른 생각으로 투표에 임할 수 있다.
정당에서 추천한 후보는 물론 무소속 후보들의 면면들을 냉정하게 판단해 지역의 진정한 일꾼들이 단체장과 의원직에 선출될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조성해야 한다.
모름지기 지방선거는 문자 그대로 지방의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다. 그럼에도 정당의 중앙당이 개입해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더욱이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개입해, 줄서기와 패거리 정치인을 양산하는 짓을 더 이상 묵과하거나 방조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 책임에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듯이 특정정당의 독주폐해는 우리 스스로 차단해야 한다.
따라서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은 결코 특정정당이 아니며, 우리의 현명한 판단만이 상식과 정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전주일보=발행인 신 영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