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덕꾸러기가 된 정유재란 때의 코무덤을 고국에 안장해야 된다(가능하면 만인의총 인근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고 이에 의견을 달리한 분들에게 사과를 요구한 지가 일주일이 넘었다. 무리한 요구였을까? 아직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남원이 이러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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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병옥 남원 향토사학자 |
지난 2월 6일 전주시 김승수 시장은 천덕꾸러기로 창고에 처박혀 있던 진도()의 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전주시 완산공원에 안치하고 이곳을 1만㎡ 넓이의 역사공원을 조성해 선열에 대한 예를 갖추고 한옥마을과 연계해 관광자원화하면서 전주권의 동학농민혁명 전적지와 연계한 순례 벨트를 조성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유골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면 1995년 일본 훗가이도 대학 표본 창고에서 6점의 유골이 발굴 되었는데 ‘동학군 괴수의 수급’이라 쓰여 있고 부언 설명으로 전남 진도의 수백 명 수백명의 농민군이 학살 되었는데 그때 희생된 농민군 지도자의 수급을 1906년 일본인이 발굴하여 잘라온 것이라 했다. 원광대학교 박맹수교수 등이 서둘러 이 유골을 1996년 국내로 봉환 했는데 매장 장소를 찾지 못해 전주 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처박혀 있었다. 이 유골을 모시고자 한 곳은 정읍의 황토현 전적지였다. 그러나 문화재 위원회에서 여기에 묘지가 들어서는 것이 맞느냐는 이견이 있어 결국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넘기면서 안장지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이번에 전주시가 나서서 역사공원으로 승화시키기로 한 것이다.
필자는 이 유골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지난해 12월16일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고, 그렇다면 만인의총 인근으로 모시는 방안이 좋겠다 싶은 생각과 욕심이 들었다. 그러나 본격 거론하기가 난처했다. 그 때도 코무덤 이장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만인의총을 공동묘지로 만들 생각이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임진·정유재란 유적지에 무슨 동학농민군 유골이냐는 반론과 그쪽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일을 하다 보니 이제 진도 사람 유골까지 욕심내느냐는 화살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이제 전주시의 결단을 보면서 120년을 떠돌던 혼백이 안치될 수 있다는데 안도의 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음과 함께 한쪽으로는 허전한 마음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전주시의 발상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 점의 유골이지만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모시면서 역사 교육과 답사 현장 및 전시·체험 시설을 만들어 문화 자산이면서 답사·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방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실망하지도 않는다. 전주의 경우 인위적인 가공성이 다분하지만 우리 남원은 가공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조상에 대한 예우와 현장성에 기존의 시설을 병용하고 역사 사실을 복원함으로써 전주의 역사공원을 몇배 능가 할 수 있는 자산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 원석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고장이 우리 고장 남원이기 때문이다.
남원에는 만인의총이 있다. 있으나 도 관리로 방치해 놓은 상태이지 활용에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남원성 북문이 발굴 되었고 구남원역의 역사와 시설이 골격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남원성 북문의 복원과 북쪽성벽의 복원은 역사 사실의 복원이고 구남원역사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철·동·은·금·다이아몬드의 어느 보물로 격상시키느냐가 될 것이다. 이 구남원역을 어떻게 만인의총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교룡산성과 은적암(덕밀암)과 연계시키냐에 따라 광한루에 유입된 관광객을 남원역으로, 만인의총으로 이끄느냐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남원시의 구도심을 살려내느냐 버리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코무덤을 이 어딘가로 모시느냐에 따라 남원의 금상첨화로 작용하면서 남원정신을 오롯이 살려내는 자손으로서의 도리를 이행하는 후손이 될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대서 사과를 요구했던 것은 필자의 감정적 치기가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그것보다는 이제 시민이 광장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더 이상 미루어야 할 이유가 없을 만큼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미루고 회피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목표를 정하고 방법을 협의하며 추진해 나가는 주체로 참여하는 주인이 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전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장 한 병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