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 맑음동두천 25.6℃
  • 맑음강릉 31.5℃
  • 맑음서울 26.0℃
  • 맑음대전 27.6℃
  • 맑음대구 30.5℃
  • 맑음울산 28.2℃
  • 맑음광주 28.6℃
  • 맑음부산 23.7℃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5.5℃
  • 맑음강화 21.9℃
  • 맑음보은 26.4℃
  • 맑음금산 27.6℃
  • 맑음강진군 25.3℃
  • 맑음경주시 30.1℃
  • 맑음거제 23.4℃
기상청 제공
메뉴

운봉고원가야 기문국과 말 이야기

가야의 나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린다.

그 철로 만든 칼과 창을 들고 말을 탄 전쟁무사가 가야의 상징처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가야 철의 이야기는 수많은 제철지의 발굴과 연구로 여기저기에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

특히나 최근의 운봉고원가야 기문국의 철 이야기는 1500여 년 동안 잠자고 있던 타임캡슐을 열었다는 평이 많다.

그런데 이처럼 가야나라 국력의 상징인 철과 나란히 했던 말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다만 고분발굴에서 수장자의 매장품으로 발견된 말뼈와 발굽편자, 말 재갈, 발걸이 같은 말 용품들이 가야시대 말의 이야기를 대변할 뿐이다.

운봉가야 기문국의 철과 말은 씨줄과 날줄이다.

그 두 문화의 융합은 2세기 동안 기문가야가 가졌던 국력의 상징이었다.

기문국의 말은 몇 마리정도였을까?

먼저 말의 사육환경을 살펴볼 일이다.

말은 초식동물이다.

풀이 주식이고 그밖에 농산부산물이 사료로 이용된다.

봄부터 가을까지 운봉고원의 풀은 말 사육에 필요한 최고의 품질을 가진다.

고냉지의 환경이 풀을 그렇게 만들고 여기에 겨울이면 기문국의 식량을 내어 주었던 밭작물의 찌꺼기인 농산부산물과 건초가 말 사료로 최고였다.

사계절 내내 말먹이의 확보가 가능한 지역에다가 소금길에서 가져온 소금이 더해졌으니 말의 사료는 충분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말을 사육하려면 사육사가 필요하다.

당시 기문국은 삼천명정도의 사람들이 대략200여 년 동안 살았던 부족형 나라라고 볼 수 있다.

100명이 30개의 촌락을 이루며 살았다면 하나의 촌락은 4인가족 기준을 삼아보면 25호쯤 되지 않았을까?

그러하니 기문국에는 30여개의 촌장이 있었던 셈이고 그 촌장들의 우두머리가 기문국 통치자였을 것이다.

촌락당 말5필을 길렀다면 30촌락에서 150두의 말이 사육되었을 것이다 즉 5호마다 1필을 사육하는 5호 작통법이 가장 좋은 소단위 취락형태이고 이것이 모여 자급형 취락구조 30개 촌락이 되었을 것이니 운봉가야 기문국은 150두 정도의 말이 항시 준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말은 힘의 상징이다.

적의 침입을 옆의 촌락에 알려주는 역할과 평시에는 농사짓는데 도움 되는 일을 해주었던 말의 효율성이 기문국의 말문화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고지도에 보이는 마요제는 가뭄에 말에게 먹일 물을 가두어 둔다는 저수지이니 그 고지도의 흔적은 아주 먼 옛날 기문국에서 온 것이 아닐까?

“다섯 집에 말 한 마리면 부자다”라는 이곳지방 말속담의 시원은 기문국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야기는 관광자원의 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