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에도 등급이 생겼다고 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별로 자녀들에게 먹이는 우유가 따로 있다. 부모들의 과잉 기대가 낳은 우유 서열이다. 순서를 나열하자면 아인슈타인 우유, 파스퇴르 우유, 서울 우유, 연세 우유, 건국 우유, 삼육 우유, 저지방 우유….
갓 태어난 자녀가 천재처럼 여겨져 맨 처음 먹이는 우유는 ‘아인슈타인 우유’란다. 그러나 천재급 두뇌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면 한 단계 낮춰 ‘파스퇴르 우유’로 바꿔 먹인다. 자녀가 더 성장해서 그것도 욕심이라는 걸 깨닫지만 대한민국 최고 학부를 갈 수재임에는 틀림없다며 ‘서울 우유’로 바꾼다. 자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시험을 치러 서울 우유마저 턱도 없다는 진실이 드러나면 ‘연세 우유’를 주문한다. 고3 수험생이 돼 모의수능시험을 두어 번 치른 뒤에는 ‘건국 우유’나 ‘삼육 유유’로 달라진다. 수능 성적이 나온 뒤 맨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우유는 ‘저지방 우유’다. 저 멀리 지방에 있는 대학.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낸 씁쓸한 유머 ‘희망 우유’ 시리즈다.
우유시장 후발주자로 진입한 파스퇴르유업은 1987년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 우유를 선보이며 ‘진짜 우유’ 공방을 촉발시켰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겠지만 20회에 걸친 투박한 디자인의 광고로 소비자에게 우유 생산기술에 따른 효능 차이를 인식시키며 프리미엄 우유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그러나 경쟁업체들도 저온살균 우유를 생산하며 추격해 오자 1995년 10월 ‘고름 우유’ 광고로 논란을 다시 제기했지만 우유 자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만 나쁘게 했을 뿐 오히려 우유시장의 위축을 불러왔다.
파스퇴르 우유가 지난 2008년 이후 6년만에 TV광고를 통한 마케팅을 재개했다. 파스퇴르 브랜드를 운영하는 롯데푸드는 지난 3일부터 '1급A보다 까다로운 고급원유', '영양소를 살리는 63℃ 저온살균' 등을 주제로 한 TV 광고를 방영하고 있다. 저온살균 우유는 '원조' 격인 파스퇴르 이외에 최근 강성원 우유, 후디스 우유, 매일유업 '63℃ 저온살균우유', 비락 '참 맛있는 저온살균우유' 등으로 제품군이 다양해졌다. 우유업체들의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마케팅으로 우유의 품질과 상거래 질서가 한단계씩 격상되길 기대한다./무등일보 논설위원 윤 종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