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은 수많은 문화들이 충돌되며 자기 자리에서 색깔과 정체성을 가지면서 남원의 스타일로 디자인 되어 왔다.
그중에 남원 칼 문화가 있다.
남원 칼 이야기의 시원은 어디일까?
남원 칼은 역사의 중심에 있어 왔고, 이야기를 가졌으며 그 시점은 가야시대이다.
지리산 남원에는 아막골이 있었다. 지금의 아영면이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쇠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철의 부족이었다.
칼을 잘 만들었던 이곳 사람들의 철의 문화는 이곳이 삼국시대 이래로 군사요충지로의 기둥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남원 사람들의 칼 만드는 솜씨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목기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목기 칼을 비롯하여, 조선 최고 명품이었던 징 제조 기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 대장간에서 제조 되었던 괭이, 호미 같은 농기구는 가야 철을 다루는 유전자로부터 나왔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생활용 칼을 만드는 기술과 솜씨도 모두 가야시대 남원 사람들의 철을 다루는 유전자를 이어 받은 결과이다.
남원 아영 고분군에서 발견된 것은 환두 대도 뿐 아니라, 말의 장신구를 비롯하여 화살 촉 같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쇠를 다루는 기술은 삼국시대 인월지역의 대장간으로 이어져 창, 칼을 비롯한 농기구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지나면서 남원 일대로 쇠를 다루는 기술이 널리 퍼져 나갔다. 그 후 일제 강점기 시절 남원 사람들의 쇠를 다루는 문화 유전자는 남원 칼을 탄생시켜 세상으로 나아가 광한루 주변에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