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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시신 실은 차량 운전

김주열 열사 묘역

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바다에 버릴 때 차량을 운전했다는 당시의 운전수가 한 인터넷 언론매체를 통해 그날의 상황을 증언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 언론매체 오마이뉴스는 최근 마산에 사는 김덕모씨(76)와 나눈 인터뷰를 소개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김씨는 1960년 3월 16일 새벽, 경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 버릴 때 차량을 운전했다.

반공청년단 소속이던 김씨는 당시 마산에 사는 한 사업가의 지프차를 운전했는데 가끔 경찰을 돕기도 했다.

1960년 3월 15일 밤 10시경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당시 손석래 마산경찰서장은 시체를 유기할 것을 지시했고 김씨는 마산세무서(현 마산합포구청 앞) 옆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차에 실었다.

당시 경찰은 김 열사의 시신을 야산에 묻을 생각이었지만 삽 등 장비가 준비되지 않았고, 주민에게 발각될 소지가 많아 바닷가로 갔다고 한다.

시신을 바다에 던질 때 상황도 이야기했는데, 시신에 돌을 매달기 위해 부두 공사현장에 있던 철사를 돌로 끊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시신을 어떻게 바다에 유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새로운 증언이 나온 셈이다.

김씨는 그 뒤 한동안 숨어 지냈고 경찰과 진술을 짜 맞추기도 했는데 검찰조사 뒤에는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50년이 넘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증언이 김씨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다.

김씨는 지난 3월 중순 김영만 전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장과 함께 김주열 열사 묘역을 참배하며 “직접 와보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살아생전 한번은 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속죄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남원 금지면이 고향인 김주열 열사는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일어났던 3·15의거에 가담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숨졌다. 이후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 열사의 시신이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고, 이것이 기폭제가 돼 4·19혁명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