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바람결에 실려 온 1500년의 제국남원 유곡리·두락리에서 가야를 읽다 김해 김씨, 부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옛 가야를 걷는 이나는 부산 사람이다. 낙동강 하구의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일상이 된 곳, 귓가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 내가 가야(加耶)라는 이름에 깊이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나의 본관이 김해(金海)이며, 금관가야의 문을 연 김수로왕의 74세손이라는 혈연적 기원 때문만은 아니다. 발길 닿는 영남의 흙 한 줌, 돌 한 덩이마다 묻어 있는 옛 가야인들의 짙은 숨결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나를 호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문적 여정의 닻을 중국사라는 거대한 대륙에 내렸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늘 해소되지 않는 짙은 아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한국 고대사를 전공했더라면,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세월 속에 무참히 왜곡되고 잊힌 우리 옛 왕국들의 퍼즐을 내 손으로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 거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탐구하면서도, 식민 사관과 후대 사가들의 무관심 속에 반쪽짜리 역사로 전락해 버린 가야를 떠올릴 때면 그 망상 같은 아쉬움은 이내 뜨거운 학문적 갈증으로 변하곤
스크린 속의 빌런, 혹은 역사의 설계자 최근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가족들과 함께 관람했다. 이미 익숙한 역사적 줄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긴장감과 몰입도는 대단했다. 흥행의 예감이 강하게 밀려오는 가운데, 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인물은 주인공 엄흥도도, 비운의 단종도 아닌 바로 한명회였다. 그는 전형적인 ‘악역’이자 현대적 의미의 ‘빌런’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만난 한명회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추하고 왜소한 책사가 아니라, 서늘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역사의 판을 짜는 거대한 설계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그를 '칠삭둥이'라 비하하며 그의 욕망을 뒤틀린 신체적 결함의 보상 심리로 치부하곤 했으나, 과연 그것이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일까. 남이의 칼끝에서 만난 권력의 비정함 내가 한명회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남이 장군의 전기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기개 높은 무장 남이. 그러나 그는 유자광의 고변과 한명회, 신숙주 등의 공격을 받아 처형당하고 만다. 이것이 역사에 기록된 ‘남이의
1. 한 평의 정직함, 그 무거운 진리태양이 지평선을 넘어오기 전, 대지는 가장 정막하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생의 밭’ 앞에 선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옥하거나 혹은 척박한 땅을 부여받는다. 누군가는 그 땅의 넓이를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흙의 성분을 탓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성숙한 영혼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하나의 준엄한 물리 법칙을 체득한다. “한 평의 밭에서는 오직 한 평만큼의 수확만 거둘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행운이라는 이름의 소나기를 기다리거나, 수동적인 과신 속에서 내일의 풍요를 꿈꾼다. 그러나 우주의 시계는 요행에 맞추어 움직이지 않는다. 수확의 양은 밭의 크기가 아니라, 그 밭을 일구기 위해 구부린 허리의 각도와 손바닥의 굳은살 깊이에 정비례한다. 이 정직한 무게를 깨닫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미래는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전자는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쟁기를 잡고, 후자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기우제의 제관으로 남는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결핍을 마주한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당신이 남보다 똑똑하지 않고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그 결핍은 오직 노력을 통해 채울 수 있
역사의 갈림길에 선 거인 : 신숙주, 변절과 실용의 경계에서 초등학교 시절, 나는 성삼문과 신숙주의 우정에 대해 책으로 처음 접했다. 조선에서는 이항복과 이덕형의 우정만큼이나 회자되던 관계였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며 결국 각자의 길로 갈라섰다. 그들의 우정은 격동의 시대 앞에서 시험대에 올랐고, 끝내 다른 결말을 맞았다. 이 글은 그 가운데 ‘변절자’라 불리기도 했던 신숙주에 대한 이야기다. 1. 엇갈린 운명의 서막: 집현전의 두 별조선 초기, 세종의 치세 아래 집현전은 찬란한 학문의 요람이었다. 그 중심에 성삼문과 신숙주가 있었다. 세종은 어린 손자 단종을 이들에게 부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두 사람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1452년, 신숙주는 우연히 수양대군과 마주친다. 분경금지법이 엄격하던 시절이었지만, 명나라 사행길에서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깊이 파악하게 된다. 수양은 신숙주의 탁월한 실무 능력을 알아보았고, 신숙주는 수양에게서 난세를 돌파할 강한 통치자의 면모를 읽었다. 이것이 훗날 거대한 선택으로 이어질 씨앗이었다. 2. 피의 비바람, 계유정난과 선택1453년, 계유정난
25년 전 백두산 천지에 섰을 때, 대륙의 바람 속에서 한 젊은 군주의 이름이 떠올랐다. 광개토대왕 담덕. 18세에 즉위한 그는 수세 대신 공세를 택했다. 백제를 압박해 한강 유역의 주도권을 확보했고, 후연을 요동에서 격파했다. 북방의 비려와 숙신을 복속시키며 국경을 안정시켰다. 이는 단순한 확장이 아닌 고구려 중심 질서의 재편이었다. 신라에 5만 병력을 파견해 왜의 침입을 물리친 결단은 장수왕 대의 안정으로 이어졌다. 39세의 이른 죽음에도 22년 치세는 고구려를 동북아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정복은 무엇을 남겼는가. 백두산에서 마주한 대륙의 꿈25년 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섰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천지의 푸른 물결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만주 대륙을 바라보며 묘한 전율에 휩싸였다. 바람 사이로 말발굽 소리가 스쳐 가는 듯했고, 황량하면서도 광활한 대지 위로 두 인물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어린 시절 만화 속 영웅이었던 남이 장군, 그리고 대학 시절 논문 속에서 치열하게 탐구했던 광개토대왕, 담덕(談德)이다. 그날 이후 광개토태왕은 내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다. 이진희 선생의 고뇌 어린 비문 연구를 읽으며 사료의 치열함을 배웠고, 이수광의
모노레일 사태 이후 남원에 남겨진 과제는 단순한 정리나 철거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멈춰 선 시설을 어떻게 다시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릴 것인가, 실패의 흔적을 미래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운행이 중단된 짚라인 탑승타워와 부대시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냉정한 평가와 과감한 기능 전환이 요구된다. 이는 새로운 개발을 논하기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도시 자산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며, 남원 도시정책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기고내용 요약] 모노레일 문제는 단순히 행정 판단의 정리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남겨진 시설을 어떻게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릴 것인가에 있다. 도시 자산을 미래 가치로 전환하는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운행이 중단된 모노레일 구조물은 고가형 구조물에 형성된 입체 공간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다. 이를 보행 중심의 공중 산책길로 전환한다면 시민에게는 휴식 공간이 되고 방문객에게는 특별한 체험 코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앞서 제안한 바 있다. [기고] 모노레일 이후의 선택 ...‘남원 하늘길’ 열자 이제는 기존 짚라인 시설 역시 냉정한
모노레일 사태는 남원에 단순한 행정 실패 이상의 질문을 남겼다. 대법원 판결로 약 505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책임이 확정되면서, 문제는 더 이상 법적 공방이 아닌 ‘이후의 선택’으로 옮겨갔다. 재운행이냐, 철거냐라는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이제 남원이 답해야 할 것은 실패한 공공사업을 어떻게 시민의 자산으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다. 이미 세워진 구조물을 비용의 관점이 아닌 가치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할 때, 모노레일은 철거 대상이 아닌 전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업보다는 실패를 딛고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용기다.[기고내용 요약] 남원 모노레일 사태는 단순한 사업 실패를 넘어, 지방 행정의 판단과 공공재정 운영, 그리고 도시 미래 전략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으로 남원시는 약 505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 결과는 시민의 재정 부담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판결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지금 남원 앞에 놓인 과제는 배상금 지급이라는 재정적 문제를 넘어, 이미 설치된 모노레일 시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놓여졌다. 총 연장 약 2.44km에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한 명의 장수를 넘어 위기 속에서 떠오르는 정신적 지도자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한산도대첩을 비롯한 명량, 노량의 해전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 국가 운명을 바꾼 분기점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리더십의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김준권 박사(빛나사역사연구소)는 최근 칼럼을 통해 한산도대첩이 지닌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다룬 문학과 영화, 역사 서술의 흐름을 짚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길을 한산도의 푸른 바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학교 운동장마다 세워졌던 이순신 동상은 세대를 관통하며 국가관을 형성한 상징물이었다. 그에게만 유일하게 붙는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는 전승 기록뿐 아니라 원칙과 겸손, 고결한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된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대중문화도 한국사에서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영화 <성웅 이순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영화 <명량>,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신화적 영웅’을 넘어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한산도대첩은 전략과 지략, 용기가
고대 동북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이른바 ‘살수대첩’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빛나사역사연구소 김준권 박사는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살수대첩을 비롯해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을 거론하며 “이 승리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민족의 자존과 정체성을 일깨운 위대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살수대첩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충돌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며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민족의 명운이 걸린 격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대륙을 제패한 수나라의 야심과 이를 막아낸 고구려의 자주적 세계관을 대비시키며, “천하관의 충돌 속에서 고구려는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지략을 높이 평가했다. 김 박사는 “을지문덕은 평양 인근까지 적을 유인한 뒤 살수에서 결정적 반격을 가했다”며 “113만에 달한 수나라의 대군 중 살수만 건넌 30만 5천 명 가운데 생환자는 2,700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인내와 전략이 빚어낸 전쟁 예술의 극치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살수대첩의 배경에는 이름 없는 백성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박영환, 이하 전교조)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된 데 대해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은폐돼 온 폭력 구조에 균열을 낸 역사적 결정”이라며 강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교조는 3일 성명을 통해 “수십 년간 침묵을 강요당했던 피해생존자들의 투쟁이 만든 변화”라고 평가했다. 전교조는 "이번 법 개정이 단순한 조항 변경이 아닌,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와 연령 위계 폭력에 ‘제도적 균열’을 낸 중대한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조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직접 목격해 온 친족 성폭력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피해는 피해 아동의 삶 전체를 파괴하는 장기적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친족이라는 특성상 피해자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내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가해자의 경제·정서적 권력이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해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자 절반 이상이 피해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상담을 요청하는 현실에서 공소시효는 사실상 “국가가 만든 면죄부”였다는 것. 전교조는 이번 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