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금)

  • 맑음동두천 -8.4℃
  • 맑음강릉 -1.7℃
  • 맑음서울 -5.5℃
  • 맑음대전 -5.3℃
  • 맑음대구 -2.1℃
  • 맑음울산 -2.2℃
  • 맑음광주 -3.3℃
  • 맑음부산 -0.8℃
  • 맑음고창 -2.7℃
  • 흐림제주 4.3℃
  • 맑음강화 -8.5℃
  • 맑음보은 -9.0℃
  • 맑음금산 -6.9℃
  • 맑음강진군 -2.7℃
  • 맑음경주시 -3.5℃
  • 맑음거제 -2.1℃
기상청 제공
메뉴
후원하기

[김준권 칼럼] 고구려 살수대첩 재조명… “요동에 몰아친 폭풍, 살수의 푸른 함성”

빛나사역사연구소 김준권 박사
고구려·수 전쟁의 역사적 의미 강조

 

(=타파인) 최종민 기자 = 고대 동북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이른바 ‘살수대첩’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빛나사역사연구소 김준권 박사는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살수대첩을 비롯해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을 거론하며 “이 승리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민족의 자존과 정체성을 일깨운 위대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살수대첩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충돌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며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민족의 명운이 걸린 격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대륙을 제패한 수나라의 야심과 이를 막아낸 고구려의 자주적 세계관을 대비시키며, “천하관의 충돌 속에서 고구려는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지략을 높이 평가했다. 김 박사는 “을지문덕은 평양 인근까지 적을 유인한 뒤 살수에서 결정적 반격을 가했다”며 “113만에 달한 수나라의 대군 중 살수만 건넌 30만 5천 명 가운데 생환자는 2,700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인내와 전략이 빚어낸 전쟁 예술의 극치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살수대첩의 배경에는 이름 없는 백성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성 위에서 돌을 던지고 끓는 물을 퍼붓던 민초들의 투혼이 제국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며 “고구려가 버틴 것은 장군 한 사람의 역량이 아니라 백성 전체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끝으로 “고구려와 수의 전쟁은 고대사의 한 장면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외풍 속에서도 우리의 뿌리를 지켜낸 정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하 원문)

요동에 몰아친 폭풍, 살수의 푸른 함성

  • 김준권 박사 (빛나사역사연구소)

1. 망각의 시대에 일깨우는 세 줄기 빛

우리가 책가방을 메고 교실에 앉아 있던 시절, 역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타고 귓가에 박혔던 세 이름이 있습니다. 대륙의 오만을 꺾은 고구려의 살수대첩, 북방의 강자를 잠재운 고려의 귀주대첩, 그리고 바다의 운명을 바꾼 조선의 한산도대첩입니다.

강의실의 풍경은 변하고 교과서의 활자는 바뀔지언정, 이 세 번의 승리는 단순한 암기용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척박한 변방에서 거대한 외풍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선조들의 뜨거운 민족애이자, 어떤 거신(巨神)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던 불굴의 저항정신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이름들은 여전히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동치는 민족의 자존심이자, 우리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영혼의 낙인과도 같습니다.

 

2. 정치의 연장을 넘어선 운명의 격돌

전쟁론의 대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가리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7세기, 동북아시아의 대지를 피로 적셨던 고구려와 수(隋)제국의 충돌은 그런 차가운 정치적 계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중원의 세계관과,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의심치 않았던 고구려의 세계관이 정면으로 부딪친 우주적 충돌이었습니다. 일개 국가의 영토 분쟁을 넘어, 반도 전체의 명운과 민족의 생존권이 통째로 걸린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였습니다.

 

3. 대륙의 야심과 요동의 긍지

오랜 분열을 잠재우고 대륙을 삼킨 수나라의 양견(문제)은 승리에 도취해 있었습니다. 돌궐과 토욕혼이 그의 발아래 엎드리자, 그의 오만한 시선은 동방의 태양, 고구려로 향했습니다. 고구려는 장수왕 이래 다져온 강철 같은 국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천하를 구축하고 있었고, 이는 중원의 황제에게 용납될 수 없는 가시였습니다.

 

이 긴박한 틈바구니 속에서 백제와 신라는 생존을 위해 수나라에 손을 내밀며 불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안목으로 본다면 이는 비극의 씨앗이었습니다. 고구려라는 거대한 방파제가 무너진다면, 반도의 모든 생명은 수나라의 일개 현령이 다스리는 군현으로 전락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4. 붓이 아닌 칼로 쓴 답장

597년, 수문제가 보낸 모욕적인 국서가 영양왕의 어전에 닿았습니다. "요수가 넓다 한들 장강에 비하겠느냐"며 고구려를 폄하하는 황제의 오만함에 조정은 얼어붙었습니다. 그때, 정적을 깨고 분연히 일어난 이가 있었습니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이었습니다.

"이토록 오만무례한 글은 붓이 아닌 칼로 답해야 마땅합니다!"

그의 사자후와 함께 고구려의 5만 정병은 임유관으로 진격했습니다. 뒤이어 밀려온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맞이한 것은 고구려의 매서운 추격과 하늘이 내린 장마, 그리고 전염병이었습니다. 열에 아홉이 시체가 되어 돌아간 이 패배는, 장차 벌어질 거대한 역사의 폭풍을 알리는 서늘한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5. 백만 대군의 파도와 살수의 함정

수나라의 다음 황제, 양제는 광기 어린 야심으로 인류사 유례없는 113만 대군을 동원했습니다. 600만에 달하는 인파가 요동성을 포위하고 평양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에는 지략의 거성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있었습니다.

 

그는 적을 평양성 인근까지 유인하며 적의 기운을 뺌과 동시에 그들의 허실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굶주리고 지친 30만 5천 명의 별동대가 살수(청천강)를 건널 때, 을지문덕의 지략은 거대한 함정이 되어 폭발했습니다. 강물은 적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살아 돌아간 자는 고작 2,700명에 불과했습니다. 살수대첩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인내와 지략이 빚어낸 찬란한 전쟁 예술이었습니다.

 

6. 몰락하는 제국, 영원한 고구려

수양제는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요동의 오열홀(요동성)을 계속해서 두드렸으나, 고구려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름 없는 백성들이 돌을 던지고 뜨거운 물을 부으며 제국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결국 무리한 원정으로 국력을 탕진한 수나라는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렸고, 광기 어린 황제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단순한 고대사의 한 페이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대한 외풍에 맞서 민족의 뿌리를 지켜낸 거룩한 성전이었습니다. 을지문덕의 지략과 오열홀을 지킨 무명 민초들의 투혼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고구려의 기개를 품은 채 이 땅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빛나사역사연구소 김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