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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출신 의병장 이평국 3父子 항일기록 발굴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대를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운 남원출신 항일의병장 이평국 3부자(父子)와 임기주 형제(兄弟) 등 호남출신 항일투사 36명의 항일기록이 108년 만에 발굴됐다.

경남 하동군 향토사학자 정재상(50·사진) 지리산권 우리문화연구소장은 지난달 26일 이들의 활약상과 인적사항이 기록된 문건을 외부에 공개하며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정재상 소장은 “국가기록원에 소장중인 조선총독부 문서 ‘폭도에 관한 편책’ 전남경찰부장(지방청장)의 보고서(1908년)와 남원경무분서장(1907) 보고서 등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호남출신 항일투사 36명에 관한 인적사항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 소장에 따르면 문건에는 출신지 별로 주소 성명 나이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문건에 의하면 남원시 주전면 출신 이평국 의병장과 아들 형제(30세, 27세) 그리고 남원시 이실리 임기주(35) 임영주(25) 형제,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배준필 부자(父子), 순천시 황전면 백낙선(40), 구례군 산동면 최명서(40) 등 호남출신 36인은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투쟁에 참여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평국 의병장은 강사과(임실), 고광순(담양), 고광문 형제 등과 함께 1907년 2월 남원일대에서 의병봉기 후 300여 명과 함께 항일투쟁을 펼쳤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의병진을 전남 구례군과 경남 하동군 등으로 이동시켜 일제와 맞섰다.

그리고 그는 같은 해 11월 부대를 곡성군 목사동면 효대마을 인근으로 옮겨 대일항전을 펼쳤다.

이들은 특히 일제 치하에 있던 구례·곡성경찰서와 하동군청, 그리고 우편취급소 및 일본군 수비대 본거지 등을 습격하며 일제에 큰 타격을 입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밝혀진 항일투사는 남원 11명, 전남 곡성 20명, 순천 4명, 구례 1명이다.

문건을 분석한 정재상 소장은 “일본경찰의 보고서에는 이평국이 1907년 2월 남원에서 의병봉기 후 전남 곡성 등지에서 활동 중이라는 수차례에 걸친 보고서가 있었지만 그 이후 행적은 사라졌다. 하지만 1년 후 1908년 12월 보고서에는 이평국의 아들 형제가 곡성출신 의병장 노인선의 부하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소장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평국 의병장은 1908년 초 지리산 일대 어느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 경찰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추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재상 소장은 1993년부터 영·호남지역 독립운동가 발굴과 서훈신청을 통해 지금까지 130여명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으며 2014년에는 영·호남출신 항일투사 28명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는데 기여했다.

정소장은 이러한 공로로 정부로 부터 국가 보훈문화상과 하동군민상, KNN(SBS)방송 문화대상, 합천군명예군민증서 등을 수상했다.

사진 설명

1. 남원출신 이평국 의병장이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서 강사과 고광순 고광문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고 있다는 당시 일본경찰의 보고서(1907년)

2. 남원출신 이평국 의병장이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효대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당시 일본경찰의 보고서(1907년)

3. 전남 곡성일대에서 활약한 항일의병 36인 명부 중 일부, 당시 일본경찰의 보고서(1908년)

4. 정재상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