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동은 본래 남원의 갈치면(葛峙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황죽리(황죽리)와 고산리(고산리)를 병합해 고죽리라 하고, 왕치면에 편입했다. 1956년 왕치면이 폐지되면서 남원읍으로 편입되었고, 1981년에 남원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리가 동으로 바뀌어 도통동 관할이 됐다. 고죽동에는 황죽과 고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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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高山)
고산마을은 역사적으로 남원에 전란이 있을때마다 피난처로 알려져 왔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이 함락될 때에도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하였는데 김씨와 박씨들이 대부분 이었다고 한다.
그후 1800년경 황죽마을 쪽에서 이씨들과 양씨들이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지형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굴속같이 아늑하다 하여 고산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 저녁 5시에 ‘탑제’ 라고 부르는 당산제를 지낸다. 또 언제 쌓았는지는 모르나 마을 앞 산에 나무가 없어 보기 싫게 드러나서 그 흉액을 막기 위해 조산(造山)을 쌓았다는 조산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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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죽(黃竹)
본래 이름은 ‘누른대’다. 1309년(고려말 공민왕 16) 영광 류씨가 들어와 대대로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룬 곳이지만 류자광이 몰락한 이후 나중에 들어온 이씨들이 크게 번창 하였다고 한다.
예부터 이 마을에는 자연생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무령군 류자광이 태어나자 대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것은 류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가 누렇게 죽은 것이라 하고 하는데, 이후로 마을 이름을 류자광이 대나무 정기를 타고 태어나 대나무가 누렇게 변했다고 해서 ‘누른대’ 로 고쳐 불렀다. 그후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황죽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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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위치와 지역세
시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남서방향으로 월락동과 동북방향으로 갈치동과 접하고 있으며 인근 광치동과 접경되어 있다.
총면적은 378ha로 동 전체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황죽 206세대 465명(남 233, 여 232), 고산 32세대 67명(남 29, 여 38) 이다.(2016. 3. 31 기준)
한국담배인삼공사 남원원료공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폐업돼 있으며 시내에 있던 남원의료원이 마을 앞에 새 건물을 짓고 옮겨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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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도로명 - 누른대길
황죽마을 안길로 마을 중심을 관통하고 있으며 고죽동 98-2에서 고죽동 623-1까지 647m(폭5m) 다.
누른대길은 누른대, 즉 황죽(黃竹)에서 유래한다. 처음 ‘대나무가 괴로원한다’는 뜻에서 고죽리(苦竹里)라 하였으나 나중에 황죽 또는 누른대라는 말로 불리었는데 도로명은 여기에서 따왔다.
무령군 류자광이 고향 남원을 왕래할 때 이 바위에서 말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원래는 땅에 묻혀 있었으나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도로가 개설되면서 몸체가 땅위로 드러나 있다.
-도로명사진 (누른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