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조국과 함께 만나는…”
정치의 언어는 간결해야 하지만, 이 문장은 남원 정치의 현주소를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름은 앞에 섰고,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조국’이라는 상징 뒤에 숨은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문제는 그 상징이 남원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남원 정치가 또다시 익숙한 이름과 낡은 방식 앞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전·현직 민주당계 인사들이 특정 인물의 상징에 몸을 기대 출마 채비에 나섰다.
간판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정치의 내용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비전은 없고, 새로운 인물도 없다.
남은 것은 정치적 상징에 대한 편승과 과거 이력의 재활용뿐이다.
정치는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남원 정치판에서는 정책보다 이름이 앞서고, 비전보다 간판이 먼저 소비된다.
특정 상징이 만능 열쇠처럼 선거판을 여는 순간, 남원의 현실과 미래는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이 정치에는 위기의식이 없다.
남원은 이미 고령화의 정점에 서 있다. 청년은 떠났고, 아이 울음소리는 줄었다. 산업은 늙었고, 행정은 속도를 잃었다.
이런 도시에서 필요한 것은 상징 정치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출마 예정자들의 언어 어디에서도 인구 구조에 대한 진단, 지역 산업에 대한 해법, 청년을 붙잡을 설계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말은 늘 같다. “경험”, “경륜”, “검증된 인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경륜은 남원에 무엇을 남겼는가.
그 경험은 시민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경륜은 책임으로 증명돼야 하고, 경험은 결과로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경륜이 아니라 관성이고, 경험이 아니라 기득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특히 중장년 정치인의 반복 출마는 이제 ‘헌신’이 아니라 정치적 체력 과시로 읽힌다.
후배를 키우기는커녕 길을 비켜주지도 않는다.
세대교체를 말하면서도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것이 과연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인가.
더 심각한 것은 감성 정치의 재등장이다.
정당의 이름, 인물의 상징, 진영의 감정에 기대 표를 얻으려는 방식은 이미 시민들에게 깊은 피로를 안겼다.
시민은 더 이상 “누구 편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이냐”를 묻고 있다.
남원시민이 원하는 것은 새 얼굴이 아니라 새 생각이다.
큰 이름이 아니라 분명한 책임이다.
구호가 아니라 실행 계획이다.
특정 인물의 이름을 외친다고 남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상징 뒤에 숨는 순간, 남원의 시간은 또다시 도둑맞는다.
이제 남원 정치는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이름을 붙잡고 정체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새로운 길을 열 것인가.
정치는 추억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남원이 다시 서려면, 먼저 낡은 정치부터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