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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의 연호 ‘편운화상 승탑’

견훤은 백제가 멸망한 이후인 892년 무진주(武珍州: 지금의 광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라 일컬으며 세력을 확산, 900년에 완산주(完山州: 지금의 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세운 후백제는 45년의 짧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구산선문 최초의 사찰로 신라 흥덕왕 때 증각대사 홍척이 세운 실상사에는 2대 수철화상의 뒤를 이은 편운화상 승탑이 있다. 이 승탑은 실상사와 후백제가 매우 깊은 관계를 형성하였고 한때 후백제의 영역임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 있다.

실상사에서 약수암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300여 미터 가다 좌측으로 옛 조계암터에 있는 편운화상 승탑을 보면 기존 실상사에 세워진 승탑과는 그 모양이 확연히 다른 이형적 승탑이라 할 수 있다. 이 승탑의 높이는 182cm, 기단부는 원형 하대석과 중대석이 1석으로 되어 있고 시루 모양의 탑신부와 마치 바루를 업어 놓은 듯한 옥개석 위에 버섯 모양의 보주가 있는 매우 단정한 모습이다. 원형 탑신부의 면에는 후백제의 연호가 새겨진 명문이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創祖洪陟弟子 安峯創祖片雲和尙浮屠 正開十年庚午歲建」이라고 각자되어 있다. 그 내용은 ‘실상사를 창건한 조사 홍척의 제작이며, 안봉사를 개창한 편운화상의 부도이다. 정개 10년 경오년에 세우다.’ 여기서 ‘正開’는 후백제 견훤이 사용한 연호로 ‘庚午’는 91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편운화상 승탑은 역사적으로 후백제의 세력이 어느 지역까지 세력을 뻗치고 불교와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동안 학계나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국가문화재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왔지만 무관심 속에 비지정문화제로 방치되어 1100여 년이 흘렀다.

그리고 올 초 3월 31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한편에서 가치가 평가 절하된 지방문화재 지정에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문화재 지정의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와 시대적 대표성과 유일성이다. 편운화상 승탑은 이러한 기준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무엇보다 후백제의 연호가 새겨진 유일한 승탑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천년고찰 실상사를 찾는다면 가까운 조계암터에 들러 편운화상의 승탑을 통해 후백제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글=남원문화원 사무국장 김현식